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마음이 무거웠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1987》을 보고 나서 꼭 그랬습니다. 회사에서 점심 먹으며 동료들과 정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나누는 그 일상이, 사실은 누군가의 목숨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는 사실이 밥을 먹다가 갑자기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고문치사 사건에서 민주항쟁까지, 영화가 재현한 것들
《1987》은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가 경찰 고문으로 숨진 사건, 즉 고문치사(拷問致死)에서 시작합니다. 고문치사란 공권력이 피의자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가한 물리적 폭력으로 사람이 사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화는 이 사건이 어떻게 묻히려 했고, 어떤 사람들이 막아섰는지를 촘촘하게 따라갑니다.
당시 고문이 자행된 남영동 대공분실은 공식 명칭이 따로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해양연구소'라는 위장 간판을 달고 있었고, 영화에서는 '북해양연구소'로 설정되었습니다. 이곳은 현재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뀌었으며, 영화 촬영도 실제 그 건물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고문실 역시 당시 남영동 고문실을 그대로 재현했는데, 세트가 아닌 실제 공간에서 찍었다는 점이 장면에 분명히 묻어납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다큐멘터리적 고증(考證) 방식입니다. 고증이란 역사적 사실을 문헌이나 실물 자료를 토대로 확인하고 재현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카메라 워킹은 핸드헬드와 수동 줌을 주로 사용했고, 타이포그래피는 타자기 느낌으로 처리했습니다. 필름 카메라의 빈티지 렌즈를 써서 인물 주변이 번지는 옛날 필름 특유의 질감을 살렸습니다. 이 선택 하나만으로도 화면이 기록 영상처럼 느껴지는 효과가 납니다.
배우들의 디테일도 인상적입니다. 김윤석 배우가 연기한 박처원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은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했는데, 평안도 사투리를 소화하기 위해 실제 평안도 출신들을 직접 만나 연습했다고 합니다. 의상에 패드를 대고 키높이 구두를 신어 인물의 위압감을 키웠으며, 특수 마우스 피스로 얼굴 형태까지 실제 인물과 비슷하게 맞췄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그 인물이었습니다. 악역인데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논리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이었고, 그게 오히려 더 불편했습니다.
영화 속 핵심 장치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남영동 대공분실: 실제 고문 장소로, 현재는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운영 중
- 핸드헬드 촬영: 다큐멘터리 느낌을 주기 위한 의도적 선택
- 빈티지 렌즈: 1980년대 필름 질감을 재현하기 위한 촬영 기법
- 박종철 열사 시신 더미: 여진구 배우를 본떠 제작
- 이한열 열사 운동화: 밑창까지 동일하게 재현, 한국신발산업협회 협조
역사의식, 영웅 서사로 소비되지 않길 바랐던 이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동보다 미안함이 더 컸습니다. 30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봐도 괜히 나섰다가 손해 볼까 봐 입을 다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한테 영화 속 인물들의 용기는 단순히 감동적이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조금 아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감동적인 흐름에 집중하면서 그 용기를 내기까지의 두려움이 충분히 표현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양심선언(良心宣言)은 목숨을 건 결단입니다. 양심선언이란 조직이나 권력의 압박을 무릅쓰고 숨겨진 사실을 공개 발표하는 행위인데, 영화에서는 그 결단이 다소 빠르게 처리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조 반장 캐릭터가 박희순 배우의 열연으로 가장 입체적으로 표현되었지만, 그래도 인물의 내면을 더 천천히 들여다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남습니다.
출장으로 광주를 자주 가는 저는 5.18 민주항쟁 관련 장소를 가끔 들릅니다. 그곳에 설 때마다 느끼는 감각은 영화에서 받은 것과 다릅니다. 공간이 주는 무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그 무게를 최대한 스크린 안에 담으려 한 작품이고, 제가 본 한국 역사 영화 중에서 이만큼 촘촘하게 만들어진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헌법학 관점에서 보면, 영화가 다루는 시대는 간선제(間選制) 대통령 선거 체제가 유지되던 시기입니다. 간선제란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지 않고 선거인단이 대신 선출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현행 헌법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하며 직선제 개헌 요구를 거부했고, 이것이 6월 민주항쟁의 불씨가 됩니다. 영화는 이 구조를 배경으로 깔면서, 그 안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내디딘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건, 역사의식이 특정 세대나 운동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최근 일부 기업이나 브랜드가 5.18 민주항쟁을 희화화하거나 가볍게 소비하는 방식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아직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왜곡과 폄하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영화 《1987》이 지금도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자료에 따르면 6월 민주항쟁 기간 동안 전국 34개 도시에서 시위에 참가한 시민 수는 약 50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500만 명이라는 숫자가 영화 속 개인들의 이야기와 겹쳐질 때, 비로소 역사가 추상적인 숫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1987》은 꼭 봐야 할 영화라는 말은 쉽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릴 수 있어서입니다. 다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지금 제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의 출처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민주인권기념관을 직접 방문해 보시는 것도 권해드립니다. 스크린에서 본 공간을 실제로 발로 딛고 서면, 그 감각이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최근 스타벅스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조롱하는 멘트와 함께 이벤트를 했고 이로인해 많은 이슈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시고 다시 한번 본인의 역사의식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